한국쿵후 역사
한국쿵후의 역사
쿵후는 1950년대 전후에 국내에서 화교들에게만 무술을 지도하던 중국 쿵후의 고수들이 한국인들에게도 전수하게 되었고 소수의 한국인들이 어렵게 무술을 전수받아 국내에 보급시킨 것이 오늘날의 한국 전통 쿵후 십팔기 무술의 뿌리가 되었다. 초창기 쿵후무예를 전수했던 중국의 노사(先生)는 서울에서 소림권의 고광유 노사, 매화 당랑권의 임품장 노사가 전수하였으며, 인천에서는 팔괘장의 노수전 노사가 전수하였고, 부산에서는 당랑권의 강경방 노사가 전수하였다.
그리고 화교무술가의 이덕강 노사와 여품삼 노사 등이 지도하였다. 국내의 쿵후 무예는 임품장 노사와 이덕강 노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이들에 의해 지도받았던 한국의 무술인들이 사범자격을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의 사범들이 늘어나면서 무술 사범들의 구심점이 필요하여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의 모체인 대한십팔기무술협회의 황주환 회장님께서 중국노사들과 협의한 후에 1965년 아현동의 국술총본관에서 (당시 대만의 대사관에서 인정받음) 대한민국 최초로 본 협회의 모체인 [전국무술국술협회]를 창립하고 총재로는 중국의 임품장 노사가 추대되고 회장은 한국의 황주환 노사가 추대되어 중국 십팔기무술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 후 1967년 3월에 한국의 쿵푸 무술인 으로 구성된 [대한십팔기무술협회]를 설립하여 회장으로 재추대 되면서 한국 십팔기무술 문화의 새 시대를 열었다. 협회가 설립된 후에 강용일, 이일형, 김갑현, 김주헌, 정소우, 최상철 등 국내 1세대 무술노사들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무술도장을 개관하여 쿵푸 십팔기무술을 본격적으로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89년에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인 대한우슈협회가 설립되고 사회단체인 대한십팔기협회가 유사단체로 활동하여 1997년 12월에 대한십팔기무술협회를 대한쿵후협회로 개명하면서 전통권과 현대권 으로 분류되는 계기 가 되었으며 이러한 중국의 현대무술 우슈(WU-SHU)가 들어오면서 한국의 전통무술(전통권) 쿵후(kung-fu) 수련자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근대무술 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쿵후(십팔기)무술의 전통권법이 소실될 위기까지 왔었다.
이러한 위기감과 안타까움에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 최주성 회장이 중심이 되어 본 협회의 설립자이신 황주환 회장님을 총재로 추대하고 뜻을 함께한 의식 있는 소수의 사범들과 조직개편을 하여 강경한 의지로 전통권법을 지켜가자는 뜻을 모아 많은 시련과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국내 최초로 설립된 중국무술 쿵후무술협회를 해산시키지 않고 전통권법을 우리 민족의 정서와 체형에 맞게 토착화시키는 등, 한국의 전통쿵후무술을 계승 발전시켜 전수하게 되었다.
또한 본 협회는 1997년 12월에 현대권 우슈와 차별화를 위해 협회명을 현대정서에 맞게 십팔기라는 이름을 삭제하고 대한쿵후협회 로 명칭을 정정하였으며 2005년 12월에는 문화관광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여 한국 쿵후무예를 대표하는 공인단체로써 공신력 있는 자격증과 단증을 발급하고 있다. 본『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는 전통 권법과 병기술, 태극권과 기공 수련이 표현무술이 아닌 실전 위주의 수련으로 종목의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중국의 쿵후무술은 중국의 문화혁명의 불행한 역사 속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동안 전통쿵후 무예의 전수가 상당부분 소실되었으나 한국에서는 그대로 전수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쿵후무술이 중국의 쿵후무술 보다 좀 더 심도 있게 전수되고 있는 부분도 많으며 이를 더욱 발전시켜 종주국인 중국의 쿵후무술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경지의 한국의 전통무예 문화로 더욱 승화시킬 것이며 한국무예의 또 다른 측면으로 형성시켜 나갈 것이다. |